

영감을 주는 오브제로 채운 31평 아파트
안녕하세요. 제품을 디자인하는 디자이너 부부입니다. 저와 와이프 둘 다 회사에서 생활가전제품을 디자인하고 있어서 집도 우리가 만드는 디자인 제품처럼 우리가 꾸며보자고 마음먹고 인테리어에 도전하게 됐어요. 저희의 디자인을 현실에 실현시켜 주시고 다듬어주신 공바공 디자인이 없었다면 어려웠을 것 같아요. 디자인과 기획도 중요하지만 저희의 의견을 꼼꼼하게 들어주시고 최대한 반영할 수 있게 도움 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저희가 처음 부동산 계약하자마자 만들었던 3D 스케치입니다. 둘 다 3D 프로그램을 다루는 직업이라 그런지 손이나 도면으로 그리는 것보다 훨씬 편하더라고요. 업체와의 미팅 전, 저희가 생각하는 느낌을 정한 후 사전 미팅에 들어갔습니다. 각 공간별 원하는 레퍼런스 이미지를 함께 보여드리며 협의하니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었어요. 미팅 이후 실측된 도면을 바탕으로 스케치업으로 구체화하며 시공에 들어갔습니다.
현관
언젠가 우리 집이 생기면 유리블럭을 꼭 써봐야지, 하고 생각했습니다. 신발장 수납공간을 포기하고 유리블럭을 선택한 것이죠.
자취 시절에 살았던 2000년대 아파트가 지금의 집과 거의 같은 구조였는데, 배달하시는 분이 집에 오시거나 손님이 방문하셨을 때 거실이 바로 보이는 구조인 게 어쩐지 부끄럽고 민망하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복도 같은 구조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원래는 거실과 아예 분리하는 느낌으로 더 안쪽까지 설치하는 걸 기획했는데 답답해질 것 같아서 절충한 부분이에요.)
신발장 위에 있는 작은 선반을 이용해서 저희가 좋아하는 오브제들을 올려뒀습니다. 언젠가 교토의 편집숍에서 사 온 부채, 가구 디자인을 하는 친구가 만들어준 나무 그릇, 복을 주고 귀신을 쫓는다고 어머니가 주신 소금 단지까지. 작은 오브제 하나하나가 저희에겐 의미가 있고 영감을 주는 물건들이에요.
해가 질 무렵이면 이렇게 빛이 길게 들어와 유리블럭에 맺힐 때가 있어요. 정말 예상하지 못했던 아름다운 그림이 만들어집니다. 아무래도 남서향 아파트이다 보니 오후가 될수록 점점 아름다워지는 공간이 되는 것 같아요.
거실
여느 구축 아파트들과 마찬가지로 현관 다음엔 바로 거실이 이어지는데요. 거실에도 소파 뒤편으로 현관 신발장과 같은 레벨의 수납장을 설치했습니다. 이 집을 처음 기획할 때부터 저희는 일반적인 한국 아파트 스타일을 지양하고자 했어요. 거실은 운동장처럼 넓고 TV밖에 안 보이는 그런 집은 피하고 싶었죠. 편히 쉴 수 있는 소파와 테이블이 중심이 되었으면 했거든요.
저희 부부는 공간을 채우는 요소로 조명을 정말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처음 이 집을 구상할 때 어떤 조명을 어느 곳에 배치할지를 가장 우선순위에 두고, 그다음에 가구들을 배치했을 정도죠. 둘 다 은은한 빛을 선호해서 평소 매립등은 거의 사용하지 않고 곳곳에 스탠드 조명과 펜던트 조명을 배치하여 조도를 낮춰서 생활합니다.
거실 메인 조명은 flos사의 Glo ball 램프입니다. 저희 부부가 존경하고 좋아하는 디자이너인 Jasper Morrison의 디자인이라 더 애착이 가는 조명입니다. 다른 하나는 최근에 구입한 Richard Sapper의 디자인 램프 Tizio입니다. 주니어 시절부터 동경하는 선배님들의 책상에 있는 티지오 램프를 보며 막연히 사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는데요. 공간의 분위기를 사로잡는 디자인 측면에서나 높낮이와 빛의 각도를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는 기능성에서 모두 합격인 아름다운 조명입니다. 덕분에 밤늦게 소파에 앉아서 독서등으로 아늑하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소파에 앉아서 바라본 거실 모습입니다. 거실 = TV라는 공식을 깨고 싶어 TV의 위치를 끝까지 고민했지만 티브이가 주는 백색소음을 포기할 수 없어서 공간과 가장 잘 어울리는 삼성 Serif TV를 선택했어요.
로우 테이블은 @THISISMINE 이라는 가구 공방 겸 카페를 운영 중인 후배가 제작해 준 작품입니다. 제가 직접 디자인한 시안으로 주문 제작했는데요. 화이트 오크 원목을 사용해서 따뜻하고 노멀한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자칫 차갑게 보일 수 있는 백색의 거실에 따뜻한 무게감을 안겨줍니다.
유리블럭으로 가벽을 만들면서 작은 젠다이 공간이 생겼는데요. 저희 부부의 필름 카메라를 올려두는 공간으로 만들어 봤습니다. 요즘 필름값이 너무 비싸져서 자주 사용하진 못하지만 포기할 수 없는 취미생활이에요.
집안 곳곳에 작은 액자들을 두어 저희가 찍은 사진을 인화하여 넣어놨어요. 필름 카메라의 특징이 빛을 참 아름답게 잡아낸다는 건데요. 평소에 무심하게 지나쳤던 부분들도 아름다운 작품처럼 보인다는 게 매력적인 것 같아요.
소파 뒤 공간엔 앞서 말씀드린 긴 수납장을 있는데요. 이곳에 올려놓고 싶은 오브제나 제품들을 한 달 주기로 바꿔가며 전시하고 있습니다. '월간 오브제'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저와 와이프가 나름대로 "한 달에 한 번씩 바꿔주되, 오브제 사이의 간격은 20~30cm 정도로 맞춘다."라는 약속을 만들었어요. 아무리 예쁘고 아름다운 물건이라도 어지럽게 뒤죽박죽 올라가 있다면 그건 그냥 오브제가 아니라 평범한 생필품처럼 보일 거라 생각했어요. 사실 저 수납장 안에는 아직 빛을 보지 못한 오브제들이 자신의 순서를 기다리고 있답니다.
주방
거실 쪽에서 주방을 바라본 풍경입니다. 이전 집부터 사용했던 원형 테이블은 저희 부부가 애정하는 가구 중 하나예요. 네모 반듯한 테이블보다 여럿이 둘러앉아 밥을 먹는 모습이 저희가 원했던 그림이었거든요.
테이블 위엔 저희 부부가 좋아하는 디자이너인 바버 오스거비 스튜디오의 호타루 램프를 설치했어요. 이사무 노구치의 아카리 램프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디자인으로, 국내에선 취급하는 곳이 거의 없어 영국에서 힘들게 직구한 제품입니다.
잠시 주방 비포 사진을 보여드릴게요.
저희 집에서 가장 신경 쓴 공간 중 하나가 바로 주방입니다. 기존의 ㄱ자 주방 구조는 냉장고가 있는 길목을 막고 있어서 답답해 보였는데, 조리공간을 ㄷ자로 확장하고 냉장고를 하부장과 연장되는 느낌으로 위치를 바꿔서 훨씬 넓어 보이는 구조로 변경했어요. 후드 또한 수납장 안으로 숨겼고요.
특히, 냉장고와 하부장이 연결되는 부분에서 깊이를 맞추기 위해 냉장고의 용량을 포기하고 비스포크 키친핏으로 선택하게 됐는데요. 하부장 컬러와 비스포크의 코타 화이트 컬러를 맞출 때 디자이너분들이 무척이나 신경 써주셨습니다. 직접 삼성 매장에 찾아가서 컬러칩을 맞춰보시느라 고생이 많으셨어요. (눙물 눙물) 아쉬웠던 게 있다면, 삼성 측에서 기성 인테리어 필름 업체와 협업하여 비슷한 기성 필름을 제안해 준다든지 업체와 콜라보로 개발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부분이에요. CS나 매장 쪽에선 이런 정보를 전혀 모르시더라고요.
비스포크를 구매하실 분들에게 팁을 드리자면,
1. 주방 상판이나 하부장과 깊이를 맞추고자 한다면 무조건 키친핏인지 아닌지를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확인을 안 하고 사셨다가는 싱크장보다 20센티가 앞으로 튀어나온 채로 설치되는 모습을 보게 되실 거예요.
2. 코타화이트는 화이트가 아닙니다! 화이트가 아니고 웜그레이에 가깝습니다. 저희는 한솔 PET 샌드그레이 제품으로 시공했습니다.
하부장 손잡이 쪽은 비스포크 디자인과 동일하게 검은색 필름으로 셀프 시공했습니다. 처음엔 검정으로 하는 게 너무 투머치인 것 같아서 고민했지만 붙이고 보니 정말 만족스러운 결과물이 되었어요.
사실 지금 냉장고 자리는 가스레인지가 있던 자리인데요. 냉장고 위치를 이쪽으로 옮기면서 기존 창문이 애매하게 됐어요. 그래서 목공 벽으로 정사각형 비율의 가짜 창문을 만들어주고 안쪽에 기존 샷시는 그대로 사용했어요. 이런 식으로 기존에 있는 샷시 공사를 최소화하면서 예산을 아낄 수 있었는데요. 실장님께서 센스 있게 처리해 주셔서 가능했던 것 같아요.
상판은 이케아 뮐레쿨라 제품을 사용했어요. 관리가 쉽고 무늬가 자연스러워서 진짜 원목 같은 느낌이에요. 실제로는 얇은 원목에 파티클 보드를 합성한 거라 원목에 비해 변형이나 내구성 면에서는 우수하다고 해요. 사용하면서 바로바로 물기나 오염을 제거해야 하는 번거로움은 있지만 조금만 더 부지런하면 되는 부분이라 만족하면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서재
저희 부부의 작업실이자 서재 공간이에요. 같은 직업을 갖고 있는 저희 부부는 관심사도 비슷하다 보니 이곳에서 디자인 관련된 얘기를 많이 하면서 시간을 보내요. 코로나19 때문에 와이프가 재택근무를 종종 하는 편인데 업무에 집중할 수 있게 환경을 만들었어요.
한쪽엔 3D 프린터가 있어서 저희가 디자인한 오브제나 화병 같은 것을 직접 뽑아 만들기도 하고, 집 안에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직접 만들어서 사용하기도 해요. 어떻게 보면 미래 영화에서나 보던 생활을 직접 실천하고 있긴 하네요! ㅎㅎ
침실
침실은 온전히 숙면에만 집중하기 위해서 가구를 최소화했어요. 붙박이장도 손잡이 없이 푸시풀로 적용해서 미니멀한 공간으로 만들고자 했습니다.
욕실
욕실은 저희가 여행 다니면서 좋다고 생각했던 호텔이나 리조트의 욕실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돌이나 히노키 같이 원재료를 그대로 살린 느낌이 좋다고 느꼈거든요. 실제 스톤을 쓰면 좋았겠지만 윤현상재에서 스톤 느낌의 포세린 타일을 사용해서 시공했어요.
드레스룸
와이프의 옷방 겸 파우더룸입니다. 지금은 와이프가 사용하고 있지만 나중에 아이가 생기면 아이방으로 사용할 계획이에요. 화장대는 무인양품의 시스템 선반인데, 라이프 스타일의 변화에 맞춰서 유닛을 추가로 구입하고 확장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서 2년 동안 아주 잘 사용하고 있는 제품이에요.
눈썰미 있으신 분들은 발견하셨을 수도 있겠지만, 서재의 책 선반도 동일 브랜드의 시스템 선반인데요. 내년에 새로 한 칸을 더 추가하려고 계획 중이에요. 아쉽게도 국내에는 재고가 없어서 4주 정도 배송 기간이 걸리지만 합리적인 기능과 디자인 때문에 꾸준히 늘려가고 싶은 선반이에요.
베란다
확장을 하지 않고 베란다를 그대로 살린 점은 너무 잘한 선택이었던 것 같아요. 이 집이 생기기 전까지만 해도 집은 그저 잠만 자고, 주말이면 카페를 찾아 돌아다니는 게 당연했거든요. 지금은 주말이 되면 나무와 식물을 관리하고 자전거를 닦아주는 소소한 일상을 누리게 됐습니다. 이런 행복들이 저희 부부를 집순이, 집돌이로 만들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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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 기간 포함한 2달 동안 인테리어를 하면서 신경 쓸 부분이 너무 많았어요. 마음처럼 쉽게 되는 부분이 없었지만 하나하나 공부해가며 집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들이 재미있었던 것 같아요. 머릿속에만 있던 저희 집을 예쁘게 시공해 주신 공바공 실장님, 소연 주임님, 박소장님 다시 한번 감사 인사드립니다! (꾸벅)
저희처럼 구축을 리모델링하시는 분들께 작게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글을 마치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시공 : 공바공 디자인 @0_0design.official
- 2020.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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