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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한 부모님과 함께 고쳐 만든, 귤밭 속 제주 시골집

상업공간

35평

리모델링

기타

⚡ 3초 컷! 집들이 미리보기

📍 이 집의 핵심 포인트!

✔ 안거리와 밖거리를 이어 하나의 공간 만들기
✔ 모던+동양미 감각이 섞이 가구 스타일링
✔ 제주 특유의 매력이 담긴, 감귤나무 정원

도면

먼저 도면과 함께 간단히 구조부터 소개해 드릴게요. 제주 주택의 특성상 한 부지 안에 안거리와 밖거리 건물이 나뉘어 있고 2~4채 정도의 건물로 이루어진 경우가 흔했습니다.

저희 가족이 고친 집은 두 채로 분리된 구조였어요. 안거리는 가족 모두가 함께 쓰는 공간, 밖거리는 결혼한 자녀가 따로 생활하는 공간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일반적이었다고 해요.

저희 가족은 분리되어 있던 두 채를 '통로'로 연결시켜서 실내에서 자유롭게 오갈 수 있도록 하자고 결정했어요. ‘기존 평면도’가 이 집의 원래 구조이고, 그 위에 ‘최종 평면도’가 지금의 구조인 제가 처음 구상했던 평면도입니다.

기존 구조에서는 안거리, 밖거리 어느 곳에도 화장실이 없었습니다. 외부에 화장실만 하나 있는 상태였어요. 실내에 없던 화장실을 새로 만드는 작업이 가장 난이도가 높았던 기억이 떠오르네요.

벽을 뚫어 창을 내거나 출입문을 새로 만들어 주었고, 외부의 형태는 그대로지만 방수와 지붕 단열 공사를 다시 했고 그 위에 페인트 작업까지 차례대로 진행했어요. 머리를 쥐어짜며 그렸던 저 평면도가 실제로 어떤 모습이 되었는지 하나씩 보여드릴게요.

자기소개

처음 인사드려요. 제주 서귀포 남원읍 작은 해안가 마을에 정착한 지 8년, 이제 제주의 삶이 어느 정도 익숙해진 민선이라고 합니다. 오래된 감귤나무와 작은 정원으로 둘러싸인 마흔아홉 살 시골집을 고쳐서 살아가고 있어요. 이 집과 함께 살아가는 순간들, 변해 온 모습, 그리고 그 사이에 있는 제 이야기를 조금씩 나눠보려고 합니다.

리모델링 과정

처음부터 그리 예쁜 집은 아니었습니다. 바닥, 벽, 천장, 화장실 등 손 안 댈 곳이 거의 없던 오래 비워져 있던 집이었어요.

단열도 안 되어 있고, 곰팡이 자국이 남아 있는 축축한 벽과 썩은 서까래, 외부에만 있던 화장실... 이걸 우리가 정말 고칠 수 있을까 걱정이 가득했었어요. 

그러던 중 한 집이지만 ‘함께’ 그러나 ‘혼자’라는 단어를 떠올렸어요. 저는 나만의 공간이 반드시 필요한 성격이에요. 저뿐만 아니라 누구에게나 어디를 가든지 각자만의 재충전할 수 있는 공간이 꼭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래서 분위기와 용도가 전혀 다른 두 가지 색으로 나누어보자고 결정하게 됐습니다.

💡 공간 콘셉트 

1. 함께 어우러지는 '안거리' : 계절과 상관없이 포근하고 질리지 않는 편안한 색, 회색과 살색 그 사이 톤, 무겁지 않은 나무색
2. 혼자 집중할 수 있는 '밖거리' : 차분한 색, 안정감 있는 나무색 마감, 집중할 수 있는 공간 구성


주택 외관 Before

처음 이 집을 만났을 때는 겨울이었는데, 서울의 겨울과 서귀포의 겨울이 이렇게까지 다를 수 있나 싶을 만큼 공기가 따뜻했던 기억이 남아 있어요. 마침 감귤 수확철이라 나무마다 열매가 주렁주렁 달려 있었고, 곳곳에 여전히 초록빛을 띄던 풍경이 유난히 좋게 느껴졌습니다.

주택 외관 After

감귤나무와 동백나무가 집을 감싸안고 있는 듯한 오래된 이 집을 마주했을 때, 퇴직한 아빠는 여기서 인생 2막을 시작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하셨어요. 우리 가족이 넓은 제주도에서 어느 동네 머물며 살아갈지 긴 시간 고민하고 돌아다녔던 끝에 만난 집입니다.


현관 Before

원래 이 집은 천장이 완전히 막혀 있었고, 나무틀로 된 가벽이 하나 서 있었습니다. 그 부분을 모두 철거하고 방음과 단열을 제대로 하기 위해 벽을 다시 쌓아 올렸어요.

시공 과정

현관 After

현관 나무 문도 저희 가족이 만들고 설치했습니다. 처음에는 튼튼한 철문으로 주문 제작해서 달자는 의견이었죠. 어느날 휴대폰 사진첩을 보다가 몇 년 전에 찍어둔 사진을 보고서는 마음이 바뀌게 됐어요. 사진 속 나무문은 폐창고를 카페로 탈바꿈하여 운영되던 곳인데, 그 곳에서 마주쳤던 초대형 나무문의 웅장함과 묵중함에 반해 사진을 찍어두었거든요.

너무 깔끔하고 차가운 메탈소재보다는 친근하게 느껴지는 원목소재 문이 이 집과 더 잘 어울리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집의 첫인상은 현관문이라 생각했고 처음 마주하는 그 순간만큼 웅장하게 다가왔으면 좋겠다 싶었어요. 사람 키보다 큰 문을 열고 들어갈 때 안에는 어떤 모습이 펼쳐질까? 하는 호기심과 기대감이 있는 집이었으면 했습니다.

안거리

거실&주방 Before

안거리 거실과 주방 공사 진행 중일 때의 사진입니다. 공사를 하면서 현실적인 예산 문제가 계속 따라다녔었는데, 처음 잡아둔 예산은 공사가 진행될수록 조금씩 넘어갔고 실력과 정보가 한없이 부족했던 탓에 추가 공사를 여러 번 진행했어요.


서울에 있을 때 우리 가족이 모두 모여 한 식탁에 둘러앉아 밥을 먹는 일은 자주 없었어요. 이 집에서만큼은 서로의 얼굴을 더 마주했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죠.

그래서 벽을 바라보는 부엌 대신 창밖 감귤나무를 보며 요리할 수 있는 구조로 바꾸고, 요리하는 사람과 거실에서 기다리는 사람이 서로 눈을 마주치며 자연스럽게 끊임없이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거실과 부엌 사이의 벽 일부를 허물어 주었습니다.


공사 과정에서 의견 충돌도 참 많았어요. 저는 벽을 더 허물고 천장도 더 높였으면 했고, 아빠는 오래된 집인 만큼 지붕을 받쳐주는 힘이 중요하니 무리하면 안 된다고 하셨어요. 몇 번을 부딪히고, 도면을 고쳤다가 다시 돌리고, 서로 타협과 양보를 반복한 끝에 지금의 모습이 나오게 됐네요.


거실&주방 After

기존에 있던 벽을 대부분 허물어 낸 거실과 주방입니다. 막혀 있던 부분이 많았는데, 최대한 높고 넓게 트고 불필요하게 답답한 요소들은 없애 주었어요. 자연광이 집 안을 가득 채울 수 있도록 창도 크게 냈습니다.

어디서 어떤 자료를 찾아봤는지 다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레퍼런스 이미지부터 잡지, 영화, 뮤직비디오, 유명 카페와 식당, 매장, 각종 박람회, 전시장, 박물관, 미술관, 공원 등 도움이 될 만한 곳은 물불 가리지 않고 집요하게 다 찾아보고 다녔던 것 같아요.

그렇게 오랫동안 고민한 끝에 내린 결론은 ‘어렵게 보이기보다는 누구나 봐도 편안하고 따뜻하게 느낄 수 있는 공간이면 좋겠다’는 거였습니다.

단순함이 최고라고 하죠. 여러 가지 콘셉트 후보를 두고 고민했지만 결국 돌고 돌아, 창밖의 초록빛과 잘 어울리는 포근한 회색과 살색 그 사이 톤으로 집 전체의 분위기를 맞추게 되었죠. 초기 선택한 페인트는 SH의 1804-Y50R Clay Stone Gray 입니다.

거실

거실 사진 속 고재 나무는 귤밭을 정리하다가 땅속에 묻혀 있던 것을 꺼내 다시 사용하게 된 목재예요. 지금은 쓰이지 않는 듯하지만, 예전에는 철도에 쓰이던 철도 침목이라고 하더라고요.

침목의 나뭇결이 제 눈에는 정말 멋지다 생각들어서 여러 번 깨끗이 세척하고 말리는 작업을 반복해 주었습니다. 어디에 두면 좋을지 한참을 고민하다, 거실 한쪽 벽에 기대어 올려두고 그 위에 사소한 것들을 올려두면 좋겠다 싶어서 지금 장식 테이블처럼 쓰이고 있어요.

이 침목 테이블 위에는 리모컨, 여러권의 책, 필기도구, 스피커 등이 올려져 있고 최근 희녹 제품도 함께 두었어요. 공간에 뿌리는 향 제품과 살균 스프레이인데요. 집에 놓아둔 물건들을 마음껏 사용해 보는 경험이 되었으면 해서, 이 테이블 위뿐만 아니라 이곳저곳 자유롭게 사용해 볼 수 있는 것들을 계속해서 늘려가고 있는 중입니다.

제법 많은 문의가 있었던 거실에 놓여있는 좌식 식탁 테이블입니다. 나무판을 사서 직접 만들어 줬어요. 기성 제품을 구입할까 생각도 했었는데, 아무래도 이 거실의 하이라이트는 큰 창문이라 생각했어요. 보통 높이의 식탁을 놓아보니 창밖의 귤 나무와 그 아래 현무암과 고사리 이끼 정원을 가려버려서 기껏 크게 뚫은 '보여주고 들이기 위한' 창문의 기능이 잃게 되더라고요.

그렇다고 원하는 높이와 크기 그리고 모양의 좌식형 식탁을 찾아봤지만 당연히 없었어요. 없으면 만들면 되죠. 그렇게 탄생하게 된 좌식 식탁이에요.


주방

주방을 구상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올렸던 건 엄마의 모습이었어요. 보통의 주방은 벽을 바라보는 구조가 많잖아요. 저도 어릴 때부터 요리하는 엄마를 보면 늘 뒷모습만 봤던 기억이 나요.

그래서 이 집의 주방만큼은 요리하는 사람이 소외되지 않고 요리하는 사람의 두 눈이 먼저 행복해지는 주방이었으면 했습니다. 설거지가 덜 지루하고, 요리하는 시간이 조금이라도 더 즐거웠으면 해서 큰 창을 내고 바깥 풍경을 한눈에 들어오게 했어요.

동선도 최대한 넓고 편하게 쓰일 수 있도록 ㄷ자 형태로 도면을 그렸고 아빠가 가구를 만들어주셨죠. 음식 준비가 끝나면 바로 옆으로 건네 거실에 있는 사람이 받을 수도 있고, 앉아있는 사람과 주방에 서 있는 사람이 서로 같은 눈높이에서 얼굴을 보며 이야기 나눌 수 있게 말이죠. 대화가 끊기지 않고 이어지는 주방과 거실을 만들고 싶었어요. 

사실 함께 모여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많지 않았던 저희 가족을 위한 것이기도 했습니다. 그 아쉬움을 이 집 부엌에서만큼은 조금이라도 채워보고 싶었던 마음이 컸던 거 같아요.

주방 용품은 주기적으로 교체하며 사용하고 있는데요. 아무래도 파손 위험이 클 수밖에 없다 보니, 상태를 보며 계속 바꾸고 있습니다. 이미 유명한 식기 브랜드의 제품, 제주에서 활동하는 도예가의 접시와 도구 등 온라인과 오프라인 매장에 찾아가서 구입해 놓아두고 있어요.

주방에 놓이는 용품들은 최대한 단출하게, 꼭 필요한 것들은 넉넉하게 두면서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직접 원두를 갈 때 퍼지는 향이 정말 좋다고 생각해서, 그 향을 이 주방에서 느껴보셨으면 하는 마음에 핸드드립에 필요한 도구들도 함께 비치해두었어요.

창문 틀에 놓인 이 오브제는 제주 브랜드 오두제 제품이에요. 리움/호암미술관과 협업해 만든 '벅수' 오브제인데요. 저는 처음에 모양이 제주의 동자석과 비슷해서 동자석인가 했는데, 알고 보니 아니었어요.

벅수는 마을의 수호신 역할을 하는 석상이고, 동자석은 무덤을 지키는 역할로 제주의 대표적인 석상 중 하나라고 해요. 집안 곳곳에 제주의 역사와 문화를 보다 친숙하게 느끼고 알아가실 수 있었으면 해서, 요즘 부쩍 제주의 로컬 브랜드를 더 열심히 찾아보고 있는 중이에요.


제가 거실 창을 크게 내고 싶었던 이유가 바로 오후의 빛 때문이었는데요. 해가 질 무렵인 오후 4시 전후쯤 귤나무 사이로 들어온 노을빛이 거실 벽과 바닥에 길게 그림자를 드리우는데, 바람이 불면 그 그림자가 흔들리면서 반짝거리는 광경을 마주하는 순간이 생겨요.

집 벽을 허물기 전, 귤 밭을 돌아다니다가 벽에 그려진 그림자가 수묵화처럼 느껴졌어요. 이 장면을 꼭 집 안으로 들이고 싶다 결정했고 그 벽이 집에서 가장 큰 거실 창 위치입니다. 지금까지도 맑은 날 그 시간이 다가올 때면 전혀 질리지 않아요. 그림자가 일렁이며 반짝이는 순간을 마주할 때마다 행복을 느낍니다.

사계절 거실&주방 모습

저희 집은 사계절 변화 모습도 예뻐요. 통창 밖으로 감상할 수 있는 사계절 제주의 모습도 함께 공유할게요!



사계절 모든 모습을 좋아하지만, 겨울에 함박눈이 내렸을 때의 창밖 풍경은 아직도 잊히지가 않는 장면 중 하나예요. 

많은 분들이 사랑해 주시는 거실과 주방. 이렇게 만들어지기까지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다 싶네요. 지금 돌이켜보니 그때 오래 걱정하고 고민하던 시간들 덕분에 이 집에 대한 애착도 더 깊어진 것 같아요. 가족이 처음으로 다 같이 고쳐 만든 집이라는 점도 한몫하는 듯하고요. 

집을 고친다는 과정이 얼마나 힘든지 미리 알고 있었다면, 아마 시도조차 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몰랐기 때문에 무모하게 도전해 볼 수 있었고, 직접 경험하고 나니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의 참된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게 된 것 같아요.

전문가의 시선으로는 한참 부족하고 어설픔 투성이지만, 몰랐던 영역을 몸으로 부딪히며 해쳐가서 그런지 더 애틋하고 소중한 집입니다.

침실 Before

침실 After

현관을 열고 신발을 벗으면 양옆으로 침실 두 개가 나란히 있습니다. 침실은 말 그대로 잠을 자는 방이기 때문에 군더더기가 없을수록 좋다고 생각했어요.


서울에 살 때 형제들과 늘 한 방을 사용하다 보니 각자의 물건과 생활용품이 뒤섞여 어지러웠고, 쉬는 곳이라기보다 잡다한 것들이 모여 있던 방이었죠. 언젠가 나 혼자 쓰는 방이 생기면 침대랑 꼭 필요한 것만 두고 편하게 깊이 잘 수 있는 방으로 꾸며놓고 싶다는 로망이 늘 있었습니다.

그 로망을 이 집을 통해 채웠던 것 같아요. 이 집을 찾아줄 분들도 마찬가지라 생각해요. 여행을 떠나 이곳저곳 오래 돌아다니다가 돌아오면, 결국 제일 중요한 건 마음 놓고 편하게 쉬며 잘 수 있는 방이잖아요.

그래서 침실에는 눈 피로를 줄여주는 전구색 간접 조명과 작은 탁자 조명, 포근한 침대, 그리고 쾌적한 공기를 위한 공기청정기만 두었습니다. 굉장히 단초로운 구성이지만 침실에 들어온 순간만큼은 몸이 가벼워지고 머릿속이 비워질 수 있었으면 했어요.

사진에 보이는 테이블은 서울에 살 때 구입했었습니다. 집 근처에 빈티지 원목 티크 가구를 판매하던 곳이 있었는데, 외부 인테리어에 반해 우연히 들어갔다가 이 테이블이 너무 이뻐 보여서 구입했어요.

제주로 내려올 때 제가 쓰려고 챙겨왔다가, 이 방에 훨씬 잘 어울리는 것 같아서 기증(?)한 테이블이에요. 이후에 또 가구 구입하고 싶어서 찾아봤었는데 해당 매장은 운영도 안 하고 사라진 상태라 아쉽네요.


침대 앞에 삼베가 걸려 있는데요. 처음에는 아무것도 걸려 있지 않았는데, 잠들거나 쉬고 싶을 때 조금 더 폐쇄적으로 느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다고 너무 답답해지는 건 싫어서 비침이 있는 삼베를 걸어 두었는데 빈티지 테이블과 삼베의 조합이 제법 포근한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것 같아서 걸어두길 잘했다 싶은 부분이에요. 그리고 이 삼베 원단은 저희 친할머니가 오래 보관 중이던걸 제주로 보내주셨어요.

화장실 Before

없던 화장실이 탄생하던 역사적(?)인 순간의 사진입니다. 주택 내부에 화장실이 전혀 없던 집이라 바닥 작업부터 공간 확보까지 정말 머리가 아팠던 곳입니다. 원래 간이 주방으로 쓰이던 자리를 화장실로 쓰기로 정하고 공사를 시작했어요.

사진만 봐도 아찔하네요. 벽은 온통 현무암뿐이라 다시 보강하고, 채우고, 깨고, 부수는 과정을 여러 번 반복해야 했어요. 천장재를 뜯어보니 층고가 너무 낮더군요. 구조상 저희 가족의 능력으로는 함부로 손을 댈 수 없던 상황이어서 그 대신 바닥을 더 파 내리기로 결정했습니다.

화장실 공사 때문에 일정이 꽤 지체됐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이 작은 화장실 하나 만드는 데 가장 많은 체력과 인내 그리고 비용이 들어간 것 같아요. 공사 당시 무더웠던 여름이라 더 힘들고 고된 과정이었습니다.


화장실 After

세면대 공간은 화장실 안이 아닌, 바로 옆에 따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지금은 많이 변했지만 보통의 화장실은 변기, 세면대, 샤워실이 함께 있는 습식 화장실이잖아요. 제주로 이주하기 전에 살았던 집 전부 습식 화장실이였던 게 너무 불편했었어요. 이 집은 그렇게 만들고 싶지 않았어요.

화장품이나 기타 용품을 잔뜩 펼쳐놓아도 부족함 없는 세면대였으면 했어요. 그리고 왠지 기성 제품은 쓰고 싶지 않아서 동생이랑 직접 세면대를 만들어보기로 결정했어요.


그런데, 사실 애초에는 주문 제작할 생각이었으나 업체에 견적 요청해 보니 예상을 훌쩍 넘기는 높은 금액이 나와서 고민할 것 없이 바로 포기했습니다. 차라리 우리가 한번 만들어보자! 쪽으로 방향을 틀었죠.

그때부터 며칠 동안 인터넷을 뒤져 국내외 셀프 제작 영상을 찾아보고, 자재 업체 담당자분께 전화로 이것저것 물어보면서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수십 번 돌렸어요.


탈형 과정에서 갈라지기도 했고 완성된 세면대의 무게는 상상 그 이상이라 들고 옮기는 것만으로도 큰일이었습니다. 가족이 총출동해 간신히 자리를 잡았는데, 그 과정에서 손가락 마디에 멍도 들고 허리가 나갈 뻔했던 기억이 나네요.

실내 통로 Before

안거리 건물과 밖거리 건물을 이어주는 실내 통로의 공사 사진입니다. 원래는 존재하지 않던 곳을 만들어주었어요. 두 건물은 분리되어 있었고, 그 사이 실외 공간에는 잡동사니만 쌓여 있었는데요.

비가 오거나 바람이 심하게 부는 날이면 밖으로 나가 건물 사이를 오가는 일이 꽤 불편하게 느껴졌어요. 그래서 활용되지 않던 이 공간을 실내 통로로 만들기로 했습니다. 편하게 이동만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싶으면서도, 또 그냥 지나가기만 하는 곳으로 두기에는 아쉬운 마음이 들더라고요.

실내 통로 After

퇴직하기 전 아빠의 직업은 조경가였는데요. 조경 전문가인 아빠와 긴 상의 끝에 이곳을 작은 온실처럼 꾸며보기로 결정했고, 건조한 실내에서 잘 견디는 식물을 심어 통로에도 생기를 불어넣어 주었어요. 머무는 공간은 아니지만, 두 건물을 지나가며 식물을 마주하게 되는 온실 통로를 많은 분들이 좋아해 주시더라고요. 이 집을 기억하게 만드는 요소 중 하나가 된 것 같아 꽤 마음에 드는 곳이에요.

식물 사이사이에는 제주다운 오브제들도 함께 두었어요. 부모님이 결혼하시던 때 지인분께 선물 받았던 돌하르방 한 쌍이 이곳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엄마가 40년 가까이, 버리지 않고 계속 간직해 온 현무암 돌하르방인데 온실 통로 공사가 다 끝난 뒤에 엄마가 직접 이곳에 가져다 두셨어요.


그리고 몇 달 전에 토신함이라는 오브제도 하나 더 놓았습니다. 토신함은 제주에서 가정용 사당으로 쓰이던 기물이라고 해요. 이러한 옛 제주 기물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풀어내는 제주 브랜드 오두제 제품이에요.

밖거리

다도실 Before

다도실 After

가족과 함께 벽을 허물고 뚫고 쌓는 일을 반복하며 만든 밖거리 다도실이에요. 카펫, 방석, 조명, 오브제, 가구 등 다도 공간도 끊임없이 변화를 주고 싶어서 수없이 시도하고 있는데, 초창기의 모습과 지금의 모습입니다. 변화되어가고 있다는 느낌이 드실지 궁금하네요. 그리고 최근 변화를 좀 크게 주고 싶어서 구상 중에 있습니다.

창호와 전기, 배관처럼 전문 기술이 필요한 공사는 기사님들께 맡겼고, 나머지는 부모님과 저, 동생이 함께 직접 했습니다. 날마다 먼지투성이가 되었고, 의견이 안 맞아 크게 다투기도 했고요.

작업이 길어질수록 서로 예민해져서, 말 한마디 없이 지나가던 날들도 여럿 있었어요. 그래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 모든 과정이 결국 이 집에 더 마음을 붙이게 해준 이유가 된 듯 합니다.


정원 Before

이 집 마당은 처음에 콘크리트로 덮여 있었어요. 관리만 놓고 보면 사실 제일 편한 상태였을지도 모르겠네요. 잡초가 자랄 틈도 없고, 신발이 흙으로 더러워질 일도 없으니까요.

그래도 아빠는 조경가답게 마당을 보자마자 콘크리트를 깨야겠다 하셨어요. 정중앙을 먼저 걷어내서 외부의 시선을 차단시켜줄 애기동백나무 한 그루를 가장 처음으로 심어주었습니다. 그다음에 다양한 지역에서 데려온 야생화와 나무, 제주 야생화 등을 심으면서 집 내부 벽을 허물며 나왔던 현무암들로 정원을 채워갔어요. 

정원을 만들 때 아빠랑 어떤 방향으로 정원을 채워갈지 끊임없이 대화를 나눴었어요. 지금 당장이 아니라 1년 뒤 3년, 5년 그 이상이 흘렀을 때 나무와 식물들이 성장한 모습을 상상해 보며, 동생하고 잘 다루지 못하는 프로그램을 끙끙거리며 작업했던 스케치업 결과물이에요.

마당을 정비하면서 땅속에 묻혀 있던 옛 현무암 맷돌, 두 동강 난 정낭, 오래된 철도 침목 등 지금은 집 안 곳곳에서 가구나 장식품처럼 다시 쓰이고 있습니다. 

이 나무 문짝도 그때 나온 것 중 하나예요.

총 두 짝이 나왔는데, 하나는 밖거리 다도실에서 차를 마실 때 도구를 올려두는 테이블로 사용하고 있고 나머지 한 짝은 개인적으로 소장 중이에요. 사진을 보시면 나무 문짝을 받치고 있는 현무암이 보이는데, 이 맷돌도 귤밭에서 발굴한거에요.

정원 After

휑했던 정원은 지금 작은 숲에 가까운 모습이 되었어요. 우리가 심은 것, 자연스럽게 자라난 것,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것들이 뒤섞여 있어요. 정돈되지 않은 것 같으면서도, 억지스럽지 않고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지금의 정원 모습이 저는 훨씬 좋습니다.

정원을 만들 때 화훼 농장에서 데려와 직접 심었던 식물들이 많은데, 제 무릎 정도까지 오던 아이가 지금은 제 키의 몇 배가 된 나무도 있고, 여백이 많던 자리는 이제는 틈이 없을 만큼 꽉 차서 숲속 같은 느낌을 줍니다.

매일 마주하며 살아가는 입장에서는 크게 못 느낄 때도 많은데, 이렇게 사진으로 보면 차이가 확실하게 느껴져요. 집도, 정원도, 식물도, 저도 함께 세월을 보내고 있다는 생각을 자주합니다.


+ 제주 일상 이야기

제주도에 살게 된 지 8년, 이 집에서는 6년이 되었네요. 서울에서 지낼 때는 제가 자연을 이렇게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걸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큰 관심도 없었고, 도로 주변 가로수마저 있었는지 없었는지 모른 채 그냥 살아온 것 같아요.

하지만 지금은 완전히 다릅니다. 강한 바람이 불면 기껏 자란 나무들이 부러지지 않을까 몇 번이고 보러 나가게 되고, 잎이 시들해 보이기 전에 먼저 물을 주게 됩니다. 땅과 식물, 곤충과 동물들이 하나의 고리로 순환하며 연결되어 있다는 것도 몸으로 느끼게 되었고요. 

자연을 곁에 두고 살다 보니 일상의 템포도 함께 조정된 느낌이 있어요. 여전히 바쁘게 살고 있지만, 틈틈이 주변을 돌아보고 자연 속을 걷다 보면 급해졌던 마음이 조금 느려지고, 복잡했던 머릿속이 차분해지는 순간들이 찾아옵니다. 이제는 자연이 전혀 없는 곳에서 사는 제 모습이 잘 그려지지 않아요.


마치며

가족과 처음으로 집을 고치면서 많은 시행착오와 예상치 못한 상황들을 맞닥뜨리며 제 자신도 많이 보게 됐어요. 그 과정에서 제 안의 기준도 생겼는데요.

💡 리모델링에 대한 기준

1. 과대 포장해서 보여주지 말자.
2. 예쁜 건 그만 고집하고 편리와 실용에 포커스 맞추자.
3. 내가 할 수 있는 선까지만 하자. 


아직도 저에게 이 집은 완성형이 아니에요! 스스로 미완성이라고 느끼기 때문에 눈에 잘 띄지 않는 부분까지 크고 작은 변화를 계속 시도해 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 같아요.

속도가 빠른 편은 아니라서 하나를 바꾸는 데도 오래 걸리지만, 오히려 이 느린 속도가 저를 꾸준히 움직이게 하는 힘 같기도 합니다. 어떤 방식으로, 어떤 모습으로 이 집이 비워졌다가 채워질지 들려드리러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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